2019.05
「일동장유가」를 저술하다, 퇴석(退石) 김인겸
- 공주시는 5월의 역사인물로「일동장유가」를 저술한 조선통신사, 퇴석(退石) 김인겸을 선정하였습니다.
- 김인겸은 공주시 무릉동에서 태어나고 묻힌 인물로 김인겸의 호인‘퇴석’은 무릉동의 지명 유래인 ‘무른 돌’에서 유래되었습니다.
- 김인겸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 어렵게 살다 47세에 진사에 급제하였고 57세였던 1763년(영조 39) 8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11개월간 통신사의 수행원이 되어 일본을 다녀왔습니다. 당시 조선에서 출발한 500여명의 일행은 서울을 떠나 부산항에서 승선해 대마도와 대판성(大阪城)을 거쳐 약 6개월만에 에도(江戶)에 도착하였습니다.
- 이 과정을 기록한 책인「일동장유가」는 2017년 조선통신사 관련 기록물(총 11건 333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등재된 기록물 중에는 충남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김이교의「신미통신일록」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 「일동장유가」의 특징은 일정에 대한 정확한 기록, 여행 중에 겪은 여러 가지 일, 일본과의 관계, 일본의 풍속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전문을 한글로 썼고, 익살스러운 농담을 곁들이며 일본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 국어학자들은「일동장유가」는 18세기 충청도 양반, 그 중에서도 공주사람들의 언어로 쓰여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일동장유가」는 평생을 공주사람으로 살았던 김인겸의 공주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볼 수 있습니다.
카드뉴스
- 2019.05 이달의 공주 역사인물 조선 후기 문인 김인겸(1707~1772) 1707년(숙종 33) 공주 무등동에서 출생 자는 사안(士)이고, 무릉동의 지명 유래인 '무른돌, 퇴석(退石)을 호로 삼음. 한시문에 튀어난 유학자로 47세 때인 1753년(영조 29)에 진사에 급제 1763년(영조 39)에 조선통신사의 서기로 일본을 방문 귀국후 일본에 갔던 11개월간의 여정을 "기행가사"로 역은 일동장유가를 지었으며, 지평현감을 지내고 1772년(영조 48)에 별세 중등학고 교과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 김인겸은 1707년(숙종 33)에 공주 무릉동에서 태어나 자는 사안(士安)이고, 무릉동의 지명 유래인 "무른돌" 즉, 퇴석(退石)을 호로 삼았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세가 기울어 어렵게 살다 47세때인 1753년(영조 29)에 진사에 급제하였다./공주시의 김인겸을 위치하고 있는 곳 표시
- 조선통신사 수행원으로 떠나기 전 영조가 '어디 사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신 김인겸은 문정공 현손으로 쉰일곱을 먹었고 공주에서 사나이다"라고 당당히 대답한 공주사람이었다.
- 1763년(영조 39) 57세에 통신사행의 종사관인 김상익의 서기로 뽑혀 통신사 조엄과 함께 11개월간 일본에 다녀왔다. 조선통신사행렬도 중 일부분
- 일동장유가 사진/ 일본에서 돌아온 뒤 공주에서 일동장유가를 지었다. 귀국 후 김인겸은 지평현감을 지냈고, 공주 중학동 174번지에서 말년을 보내다 1772년(영조 48)에 별세하였다.
- United Nations Educational,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 World Heritage Convention,
일동장유가는 일본 기행의 여정, 문물과 인정, 풍속 등을 한글로 기록한 8,243구의 기행가사'이다.
김인겸의 일동장유가는 일찍이 중등학교 교과서에 실렸고, 2017년 조선통신사 관련 기록물(총 111건 333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언론보도
- 공주 5월의 역사인물 ‘퇴석 김인겸’ 선정
- 조선통신사로 “일동장유가” 저술한 김인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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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시 역사인물 ‘퇴석 김인겸’ 기념행사 열어
- 20일 김인겸 묘 현장답사 및 학술 세미나 등 다양하게 업적 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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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5월의 공주 역사인물
장풍(長風)에 돛을 달고 육선(六船)이 함께 떠나 삼현(三鉉)과 군악 소리 해산(海山)을 진동하니 물속의 어룡들이 응당히 놀라리라(일동장유가 중 발췌)
1707~1772 조선후기 문인 김인겸 - 1707년(숙종33)공주 무릉동에서 출생 자는 사안(士安)이고, 무릉동의 지명 유래인 ‘무른돌’ 즉, 퇴석(退石)을 호로 삼음 한시문에 뛰어난 유학자로 47세 때인, 1753년(영조29)에 진사에 급제 1763년(영조39)에 조선통신사의 서기로 일본을 방문 귀국후 일본에 갔던 11개월간의 여정을 ‘기행가사’로 역은 일동장유가를 지었으며, 지평현감을 지내고 1772년(영조48)에 별세 중등학교 교과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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