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
청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다, 승병장 영규대사
- 공주시는 8월의 역사인물로 청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승병장 영규대사(미상 ~ 1592)를 선정하였습니다.
- 영규대사의 본관은 밀양, 호는 기허당, 속성은 박으로 공주 계룡면 월암리 출신입니다. 서산대사의 제자이며 계룡산 갑사 천련암에서 수도하였고 선장(승려의 지팡이)으로 무예를 익혔는데 매우 출중하였다고 합니다.
- 영규대사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장이 되어 승병 800명을 이끌고 의병장 조헌과 함께 청주성을 수복하는 등 최초로 승병을 일으켜 임진왜란 육전의 최초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 조정에서는 청주성 전투 승리의 공로를 인정하여 영규대사에게 동지중추부사의 벼슬과 의복을 하사하였으나 영규대사는 전령이 도착하기 전 금산전투에서 당한 부상으로 인해 월암리 부근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전해집니다.
- 영규대사의 묘비는 1810년(순조 10)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에 방계 후손들이 세웠으며, 1738년(영조 14) 승병장 휴정과 유정, 그리고 영규대사의 영정을 봉안한 표충원이 갑사 경내에 건립되어 3명의 승병장을 모시고 있습니다.
카드뉴스
- “임진왜란 최초의 승리인 청주성 전투를 이끌어 낸” 승병장 영규대사, 이달의 공주 역사인물 2019.08 영규대사(?~1592)- 밀양박씨(蜜陽朴氏). 호는 기허당(驥虛堂). 충청남도 공주 계룡면 월암리 출생. 1592년(선조 25)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분을 이기지 못하고 3일 동안 통곡하고 승병장이 되어 승병 약 800명을 귀합하였다. 이후 청주와 금산에 주둔한 일본군을 공격하였고 마침내 8월 초 청주성 수복하여 임진왜란 육전의 최초의 승리를 이끌었다. 조헌이 이끄는 의병과 영규가 거느린 승병은 1592년 8월 금산전투에서 일본군의 호남침공을 저지하였으나 큰 상처를 입고 공주 갑사로 가다가 공주시 월암리 지금의 정려비각 부근에서 숨을 거두었다.
- 본관 밀양(密陽). 호 기허당(驥虛堂). 속성 박(朴). 충청남도 공주 계룡면 월암리에서 출생하였는데 출생일은 알려진 바가 없다. 계룡산 갑사에 출가하여 휴정(休靜)대사의 고제(高弟)로 공주(公州) 천련암에서 수도하며 무예를 익혔는데 그 재능을 따를 자가 없었다고 한다.
- 제2차 금산전투 그림/임진왜란 초기에 일본군의 진로에서 충청우도는 벗어나 있어 직접적인 참화를 입지는 않았으나 충청좌도 일대가 큰 피해를 입으며, 공주에도 위험이 전해졌다. 공주 사람들은 의병을 규합하여 나섰는데 특히 1586년 공주향교의 제독관으로 부임했던 중봉 조헌의 깃발 아래에 모여들었다. 이중 제2차 금산전투에 참여했던 의병 중 가장 주목되는 인물이 승병장 영규대사이다.
- 금산전투에서 전투하고 있는 의병들 그림/영규대사는 조헌과 금산전투에서 끝까지 남은 7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죽음을 무릅쓰고 전투에 임하였지만 모두 죽고 영규대사 마저 큰 부상을 입었다. 치명적 중상을 입고 공주 갑사로 가려 했으나 결국 영규대사는 고개를 넘지 못하고 공주시 월암리 지금의 정려비각 부근에서 죽음을 맞았다.
- 영규대사 묘 사진/ 현재 공주에는 유평리에 영규대사 묘(靈圭大墓, 도 기념물 제15호),월암리에 영규대사비(靈圭大師碑, 문화재자료 제56호)가 있고, 그를 제향하는 표충원(表忠院, 문화재자료 제 52호)이 공주 갑사(甲寺)에 자리하고 있다. 1813년(순조 13)에는 충절비가 세워졌다.
언론보도
- 공주시, 8월의 역사인물 '승병장 영규대사' 선정
- 임진왜란 최초의 승리인 청주성 전투를 이끌어낸 승병장 영규대사를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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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시 8월의 역사인물 영규대사 추모 강연회 열려
- 기허당 영규대사 추모하는 강연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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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8월의 공주 역사인물
"임진왜란 최초의 승리" 청주성 전투를 이끌어 낸 승병자 영규대사
?~1592 영규대사 - 밀양박씨(密陽朴氏).호는 기허당(驥虛堂). 충청남도 공주 계룡면 월암리 출생.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분을 이기지 못하고 3일동안 통곡하고 승병장이 되어 승병 약800명을 귀합하였다. 이후 청주와 금산에 주둔한 일본군을 공격하였고 마침내 8월초 청주성을 수복하여 임진왜란 육전의 최초의 승리를 이끌었다. 조헌이 이끄는 의병과 영규가 거느린 승병은 1592년 8월 금산전투에서 일본군의 호남침공을 저지하였으나 큰 상처를 입고 공주 갑사로 가다가 공주시 월암리 지금의 정려비각 부근에서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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