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역사인물 이기한(李綺漢, 1868~1941)·이병림(李秉霖, 1889~1919) 선생은 공주시 정안면 석송리 출신으로 1919년 4월 1일 석송독립만세운동을 이끈 독립운동가입니다.
이기한 선생은 주위의 존경을 받던 정안면 석송리 출신 유림으로 독립의 희망을 품고 석송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입니다.
1919년 3월 1일 이후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선생은 4월 1일 유림 이병억 선생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마을주민 30여명을 모은 선생은 무지개울둑에서 독립만세운동의 취지를 설명한 뒤 가장 먼저 독립만세를 외치며 주민들과 함께 면소재지인 광정리로 향하였고 이 과정에서 운궁리 주민들이 합세하였습니다.
광정리에 도착한 600여명의 주민들은 선생의 지휘 아래 광정경찰관주재소를 공격하였고 이 과정에서 다수의 주민들이 일제 경찰과의 몸싸움 끝에 체포당하였으며 체포당하지 않은 선생과 나머지 주민들은 석송리로 돌아온 후 다시 광정리로 향해 야간 횃불만세운동을 진행하였습니다.
이후 체포된 선생은 재판과정에서 자신의 독립만세 행위는 조선민족으로서 정의와 인도에 입각한 행동이기에 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하였지만 결국 3년의 옥고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이병림 선생은 이기한 선생이 주도한 석송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인물로 일제 경찰의 무차별 발포로 인해 현장에서 순국한 인물입니다. 공주 지역 독립만세운동 중 순국한 사람은 이병림 선생이 처음이었습니다.
이처럼 석송독립만세운동은 공주 지역에서 가장 많은 참여자가 확인되는 만세운동으로 석송리 주민 뿐 아니라 운궁리, 내촌리, 전평리, 장원리, 북계리 등 많은 주민들이 참여하여 그 상징성이 큰 독립만세운동입니다.
이기한·이병림 선생은 이러한 공훈을 인정받아 각각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 받았으며, 이외 26명의 선조분들께서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으셨습니다.
현재 석송리 무지개울둑은 만세운동을 벌인 곳이라 하여 만세둑으로 불리고 있으며 1969년에는 기념광장을 조성하였습니다. 1984년에는 주민들이 3·1독립만세기념비를 세웠으며 1995년에는 공주향교 주관으로 3·1만세사적비를 건립하였습니다.
2019년에는 독립만세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기념식을 개최하였고, 매년 4월 1일 석송 3·1독립만세운동추진위원회에서 만세운동과 순국선열을 기리는 기념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2월의 역사인물 김옥균(金玉均, 1851~1894)은 정안면 광정리 감나무골(柿木洞)*에서 태어난 조선의 개혁을 꿈꾼 개화사상가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백온(伯溫), 호는 고균(古筠)·고우(古愚)입니다.
* 총 12명의 선조분들이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었음(정안석송 만세운동 8분, 유구장터 만세운동 1분, 공주읍내 만세운동 3분)
공주시는 나라를 위한 순국선열의 애국심을 되새기며 공주 독립운동의 역사를 널리 알리기 위해, 1919년 석송만세운동을 이끈 이기한·이병림 선생을 2021년 3월의 역사인물로 선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