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역사인물 서기(徐起, 1523~1591) 선생은 계룡산 자락인 반포면 공암(孔岩)에 정착하여 충현서원*을 세워 송준길의 아버지 송이창, 이유태의 스승 민재문 등 후학을 양성하여 기호학파의 맥을 호서 지역에 정립한 선구자입니다.
* 충현서원 : 충청우도 최초의 서원으로 1581년 창건되었으며, 1624년 사액을 받았다. 이존오, 이목, 성제원, 서기, 조헌, 김장생, 송준길, 송시열을 배향하고 있으며, 봄·가을 제향을 지내고 있다. 1984년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0호로 지정되었다.
선생이 공주와 인연을 맺게 된 시기는 1572년(선조 5) 계룡산 아래 공암으로 이주하여 후학 양성에 매진할 때부터이며, 입향조인 선생을 따라 이천서씨의 공주 정착이 시작되었습니다.
충남 보령에서 태어난 선생의 본관은 이천(利川), 호는 고청(孤靑)으로, 미천한 신분으로 인해 벼슬길에 나아갈 수 없었던 선생은 제자백가 등 다양한 학문과 사상에 관심을 보였지만, 20세인 1542년(중종 37) 토정 이지함을 만나면서부터 다른 학문보다 유학이 정도(正道)임을 깨닫고 배움에 정진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선생은 1581년(선조 14) 지역 유생들과 공주목사 권문해 등의 도움으로 주자의 영정을 모시고 고장의 명현을 배향하는 충청우도 최초의 서원인 공암정사(지금의 충현서원)를 세웠습니다.
서원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0년(광해군 2) 제자들에 의해 중수되었으며, 1624년(인조 2)에는’충현(忠賢)’으로 사액*을 받게 되어 1660년(현종 1) 돈암서원이 사액을 받기 전까지 30여 년간 지역의 유일한 사액서원으로 역할을 했지만,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훼철되었습니다.
* 사액 : 임금이 사당, 서원 등에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리는 일
1591년(선조 24) 69세의 일기로 타계한 선생은 1752년(영조 28) 지평(持平)에 추증되었으며, 저술은 임진왜란 이후 대부분이 유실되어 현재는 충청도 관찰사 홍계희가 여러 문집 속에서 선생의 글을 발췌하여 편찬한『고청유고(孤靑遺藁)』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반포면 공암리에는 선생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1976년 충현서원이 재건되어’공감토크 고청사랑방’,’박약당 인성교실’등 선생의 발자취와 선비의 삶을 알아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공주시는 충현서원을 세워 후학을 양성하고 기호학파의 맥을 호서 지역에 정립한 고청 서기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20년 11월의 역사인물로 선정하였습니다.
카드뉴스
2020 11월의 공주 역사인물 충현서원을 세워 호서유학의 씨를 퍼트리다. 고청 서기 1523~1591
충현서원을 세워 호서유학의 씨를 퍼트리다. 고청 서기 1523~1591 고청 서기 선생은 반포면 공암에 정착하여 충현서원을 세워 후학을 양성하여 기호학파의 맥을 호서 지역에 정립한 서구자다.
충현서원을 세워 호서유학의 씨를 퍼트리다. 고청 서기 1523~1591 중년 이후 고청 선생은 계룡산 공암에 정착하여 주자의 학문과 교육방법을 따라 많은 후학을 양성하였다.
충현서원을 세워 호서유학의 씨를 퍼트리다. 고청 서기 1523~1591 1581년에는 충청우도 최초의 서원인 공암서원을 세웠으며, 1624년에는 충현으로 사액을 받았다.
충현서원을 세워 호서유학의 씨를 퍼트리다. 고청 서기 1523~1591 많은 후학을 양성함으로써 호서 유학을 정립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으며, 문집으로는 고청유고가 전해지고 있다.
충현서원을 세워 호서유학의 씨를 퍼트리다. 고청 서기 1523~1591 사후 문목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반포면 공암리 고청재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제향을 봉행하고 있다.